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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列强)에 의한 한반도 분할의 역사(8)
정민채  |  mc03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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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6  13: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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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列强)에 의한 한반도 분할의 역사(8)
(임진왜란~ 8․15해방까지)
                         
6. 한반도에 대한 러‧일간 분할안

 1)일본, 러시아에 남북 분할안 제의

 
   
 
  청일전쟁의 결과 1895년 4월 17일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으로 청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여순항이 있던 요동반도와 대만 섬을 일본에 양도해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프랑스․독일 삼국은 1895년 4월 23일 공동으로 일본을 압박해 요동반도와 여순 항에 대한 전리품을 포기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청은 러시아에 그 대가로 북중국에 철도 부설권을 부여하였다. 이렇듯 일본은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 간섭으로 견제를 받았다.
 
  조선에서는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 2. 11~1897. 2. 20)까지 일어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지위가 흔들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포석을 진행했다. 1896년 5월 야마가타 아리모토(山縣有朋; 長州 군벌)가 러시아에 조선 분할 안을 제시한 것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었다.

  1896년 3월 사이온지 긴모치 외무대신 임시대리가 야마가타(일본 특명전권대사)에게 보낸 훈령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내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로 양국의 군대를 파견하되 남부와 북부로 구획하여 양군 주둔소에는 상당한 거리 간격을 설치하자󰡑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단독지배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성안(成案)된 것이다. 야마카타는 ‘조선의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권익을 공동 분할하자는 제안’을 러시아에 했던 것이다.
이미 조선은 강대국 간의 흥정의 대상이었다.     

청․일 전쟁 직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일본 특명전권대사 야마가타가 1896년 5월 24일 러․일간 조선 39도선 근처(대동강-원산)분할안과 경성(京城)근처 분할안(추후 제안) 등을  러시아에 제안 했다.

  19세기 말 러시아는 북반부(北半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으므로, 일본의 현실적 안인 남북 분할안에 대해 거부했다. 당시 러시아는 남쪽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북반부를 점령하게 되면 ‘마산포’라는 요충지를 잃게 될까봐 일본의 분할제의를 거절했다고 할 수 있다.

 2)비상시, 러․일간 한반도 분할 합의

  1896년 6월 한반도 문제에 관한 로마노프(러시아 외무대신)와 야마가타(일본 특명전권대사) 사이의 모스크바 의정서의 비밀조관(秘密條款) 1조는 다음과 같다. 만일에 조선국의 안녕질서가 문란하게 되거나 장차 문란하게 될 위험에 처해있을 때, 양국 정부는 군사 조치를 취한다.

  즉, 양국 군대 상호간의 모든 충돌을 예방하기 위하여 두 나라 군대 간에 비점령 완충지를 만들며, 그들 간의 용병지역(用兵地域)을 획정한다.

  용병지역 획정에 대한 양국 간의 논의가 더는 진전되지 않았지만, 비상시 러시아와 일본은 경성(京城)을 경계로 북쪽과 남쪽을 각각 분할 점거하는 방식에 동의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의정서는 비상시 열강에 의한 한반도 분할이 합의된 최초의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정민채, 이학(지리학)․관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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