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오피니언 > 독자칼럼
열강(列强)에 의한 한반도 분할의 역사(7)
정민채  |  mc0314@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2.12  10:51:4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열강(列强)에 의한 한반도 분할의 역사(7)
(임진왜란~ 8․15해방까지)
5. 영국 킴벌리 외상, 청국과 일본에 남북 분할안 제시 

 
   
 
19세기 들어 제국주의 열강(列强)의 침탈무대가 된 한반도에서 분할이 논의 된 것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열강들은 한반도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힘의 균형을 시도했다.

  1886년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던 영국은 조선을 청이 단독으로 맡아 공식적으로 지배해 달라고 부탁했다. 청나라 이홍장은 조선이 당시에도 청의 속국이므로 군대를 동원해 식민지로 만들어 다른 열강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한편 영국은 청일전쟁(갑오 중일 전쟁)이전, 아시아 침략을 획책하던 러․불 동맹세력을 저지함에 청․일 양국을 모두 이용하려 했으므로, 청․일전쟁의 개전(開戰)을 막으려 했다.

  1894년 7월 18일 영국 외상 킴벌리는 영국 주재 일본공사 아오키 슈조(靑木周藏)와 청국공사 습소원(襲昭瑗)에게 남북 분할 안을 제안했다. 그것은 서울을 경계로 󰡐남부 4개도는 일본이 점령하고, 북부 3개도는 청국이 맡고, 경기도는 서로 점령하지 않고 놓아둔다.󰡑는 내용의 분할 점령안을 제시했다. 

  미국 주재 일본 공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건의했다. 남부의 경상․전라․충청․ 강원은 일본의 보호 하에 두고, 북부의 평안․함경․황해는 청국이 지배하고, 경기도는 제3국의 간섭을 청․일 양국이 공동으로 방지하는 조건하에 조선 국왕의 관할 하에 둔다는 것이다.

  킴벌리는 청․일 양국이 조선의 서로 다른 지역에 주둔함으로써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피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청의 이홍장은 킴벌리의 제안에 동의 하였다. 킴벌리의 청․일 양군 공동점령을 핵심으로 하는 거중 조정안은 1894년 7월 24일 러시아․독일․ 프랑스․이탈리아 4개국 정부에 제출되어 사실상 승인을 얻었다.

  그러나 청에 맞서 한반도 전체를 노리는 일본의 반대로 이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1894년 8월 1일  양국이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하고 청․일 전쟁이 발발했다.

<정민채, 이학(지리학)․관광학박사>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회사소개광고문의찾아오시는 길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저작권문의
경기도 하남시 신장1로3번길 18 (신장동) | 대표전화 : 031-795-4992
등록번호 : 경기 아50871 | 등록일 : 2014년 1월 24일 | 발행인/편집인 : 이 재 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은숙
Copyright © 2018 하남일보. All rights reserved.